대순 사상 고찰 10가지

대순 사상의 10가지 현대적 재해석, 이건 공격도, 종교 비판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 사상을 구출하는 작업 👉 왜곡을 걷어내는 정리 작업 👉 철학으로 되돌리는 복원 작업을 하고 있어요.

도를 아십니까? (유불선)

유교에서의 도는 개인의 깨달음보다는 ‘세상을 다스리는 올바른 방법론’에 가깝습니다. 도교의 도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규범을 넘어선 ‘우주 만물의 근원적 원리’입니다. 불교에서의 도는 진리를

실학의 붕괴

실학의 치명적 한계 – 왕정 의존적 개혁의 붕괴 실학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그 성격이 **‘왕정하에서의 개혁 사상’**이었다는 점이다. 실학은 본질적으로 왕권을 전제로 한 위로부터의 제도 개혁

대순 사상의 재정립

조선 후기 사상사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외쳤던 실학자들조차 조선말의 역사 속에서 좌절되었다는 사실이다. 영조·정조 시기, 실학은 분명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토지 제도

사이비 종교의 태동

최제우와 강일순은 본래 “민중 구원”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개인적 신비체험을 절대화하고 스스로 상제를 자처한 순간부터 위험한 길이 열렸습니다. 그 사상은 한국 근현대사의 종교 왜곡

몰락한 지성의 한계가 만든 상제의 탄생

최제우는 병중의 기도 체험 속에서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그 경험을 “상제(上帝)의 계시”라 해석했고, “시천주(侍天主)”, 즉 하늘님을 모신다는 구호를 창안했습니다. 이 사상

대순사상의 기원

19세기 조선은 전통 유교 질서가 흔들리고, 외세의 압박과 민생의 고통이 겹쳐 있었습니다. 양반 지배 체제는 무너지고 있었으나, 민중의 삶은 보릿고개와 세금 수탈, 전쟁의 위협으로 피폐했습니다.

최시형과 최제우의 극적 만남

이 격동의 시기에, 몰락한 양반 출신의 최제우가 동학이라는 씨앗을 뿌렸고, 그 사상을 이어 받아 더 큰 운동으로 확장시킨 인물이 바로 최시형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한국 종교사에서 가장

최제우와 서학의 만남

최제우(崔濟愚, 1824~1864)는 영남 출신으로 양반 신분이었으나, 시대적 몰락 속에 가난과 사회적 좌절을 함께 겪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고, 경제적 곤궁 속에서 병고

대순사상의 기원

19세기 말 조선은 대내외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서구 열강의 세력이 동아시아에 확장되면서 서학(西學)으로 불리던 천주교가 중국을 거쳐 조선에 유입되었고, 기존 유교적 질서와 충돌